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계승할지 관심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는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 위에 어떤 길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할 입장이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 재위 동안 교회의 세계화와 포용 확대, 기후위기 대응 정책 등 굵직한 변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동시에 보수주의자들과의 갈등과 성직자 성학대 문제, 여성 사제 논란 등 많은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레오 14세 교황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난민의 발을 씻기고 여성의 교회 내 역할 확대를 지지하고 성소수자를 포용하고 부활절 미사에서 가자지구 휴전을 호소하며 전 세계 평화에 목소리를 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이어받을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바티칸 재정 개혁 프란치스코 교황은 투명성 강화와 부패 척결, 부동산 거래 규제 등을 추진하면서 바티칸의 재정 개혁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새 교황은 이 유산을 물려받을까. 첫 공식 연설에서 교황은 바티칸의 재정 개혁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동안 새 교황은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수도회 총장은 단순한 영적 지도자가 아니라 각국의 수도원 운영과 투자, 인사, 부동산 운영의 실질적인 책임자다. 또 페루 칙라요 대교구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빈곤층과 소외계층을 위한 투명한 재정 사용과 지역 공동체와의 신뢰 회복에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정 개혁을 이어갈 경험과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바티칸의 재정은 여전히 개혁이 필요하다. 2022년 기준 바 티칸은 8300만 유로의 예산 적자와 6억3100만 유로의 연금 기금 부족을 안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작한 재정 개혁을 이어받되 더 체계적이고 실무적인 방식으로 정비하면서 개혁의 내실화와 제도화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소수자 신자에 대한 입장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동성애를 죄로 간주하며 동성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초부터 교회 내 보수층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빈곤층과 이민자, 환경 문제와 함께 LGBTQ+에 대한 포용적 입장을 고수했다. 2013년에는 "동성애자가 하느님을 찾고 선의를 지닌다면, 내가 그를 판단할 수 있는가"라고 발언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2023년에는 로마 가톨릭 사제가 동성 커플에게 축복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트랜스젠더가 세례와 대부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 같은 결정은 보수파와 교황청 내부의 거센 반발과 저항에 직면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성소수자 이슈에서 전임자의 유산을 이어갈지, 아니면 보다 전통적인 노선을 선택할지 고민해야 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 문제에 대해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되 좀 더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주교회의 간의 대화'에서 국가별 문화 차이를 고려한 방식으로 축복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 동성애에 대해 사형을 적용하는 지역도 존재한다"며 일괄적인 교리 적용이 어려운 현실을 언급했다. 다만, 그는 2012년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복음과 충돌하는 동성애적 생활양식에 동정심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발언한 것이 전해지기도 했다. 뉴욕타임스가 레오 14세 교황을 프란치스코 교황보다는 성소수자에 덜 우호적이라고 평가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 교황은 최근 바티칸 내 개혁 흐름 속에서 최고위급 성직자를 지냈다. 교황으로서 앞으로의 행보는 2012년의 발언과 다를 수 있다. ▶성직자 성학대 문제 프란치스코 교황 당시, 가톨릭교회 안의 조직적인 성학대 은폐 문제가 전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초기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개혁 정책을 펼쳐 칠레의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했다. 2019년에는 수녀에 대한 성폭력 문제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교회의 과제로 남아 있고 레오 14세 교황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페루 칙라요 교구장을 맡았을 당시, 성직자 성학대 피해자 단체(SNAP)는 그가 성학대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여성의 역할 확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의 교회 내 지도력 확대에 일정 수준의 개혁을 단행했다. 로마 여성 수감자의 발을 씻는 행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여성 포용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3년 세계주교회의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최초로 허용했는데 이 회의를 주재한 인물이 바로 당시 추기경이던 레오 14세 교황이었다. 레오 14세 교황 재임 중에도 여성의 부제 서품과 사제 서품 문제는 계속해서 교회 내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상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에 대해 "여성을 성직자로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레오 14세 교황은 여성의 사제 서품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여성의 지도적 역할 확대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성의 기여는 인정하되 성직자 자격에는 선을 그은 셈이다. ▶이민자에 대한 관점 프란체스코 교황은 이민자와 난민에 가장 적극적이고 공감하는 태도를 보인 교황으로 평가받는다. "맞이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고 통합하라"는 당시 교황청의 핵심 원칙이었다. "이민자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성과 연민을 일깨우는 존재입니다"라고 말한 프란체스코 교황은 직접 바티칸에 시리아 난민 가족을 받아들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추방 정책을 "기독교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페루에서 20년 이상 사목 활동을 한 새 교황은 특히 베네수엘라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2017년에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난민 수용 금지 조치를 하자 "예수님께서 우신다"는 글을 공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월 J.D. 밴스 부통령이 기독교적 사랑의 우선순위를 주장하며 이민자에 대한 제한을 정당화하자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에 순위를 매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며 반박했다. 지난 8일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레오 14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행한 첫 연설에서 '다리를 놓는 교회'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교회'를 강조했다. 이는 국경을 폐쇄하고 벽을 세우는 정책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자 이민자와 난민을 향한 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풀이된다. ▶교회 신자의 지리적 다양성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추기경단에 지리적 다양성을 확대해 왔다. 그 결과 이번 콘클라베는 교회 역사상 가장 다양한 출신 국가들이 모인 회의로 기록됐다. 유럽 출신이 여전히 과대표되는 상황이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 교회 지도부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가톨릭교회는 남반구,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가톨릭 인구는 2013년 약 1억8500만 명에서 올해 약 2억300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유럽의 신자 수는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추세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랫동안 사목 활동을 했던 교황 레오 14세는 비서구권 지역의 목소리에 익숙하다. 레오 14세 교황은 지역 교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특정 이슈에 대해 지역 주교단의 논의를 강조해 왔다.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 문제도 지역 주교단이 문화적 현실을 고려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가톨릭교회가 신자의 지리적 다양성에 대응해 어떻게 지역 교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교회의 역할을 강화할 것이냐는 새 교황의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안유회 객원기자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레오 재정 개혁